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역 불균형 문제를 창업 활성화와 지역특화산업 육성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지방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본과 인재 등 창업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지방에서 기술창업을 해 주목받고 있는 인투시의 오재환 대표를 만나 그 비결을 들었다.
신발장을 열고 오늘 어떤 구두를 신을지 선택하는 건 옛날 일이 됐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스마트 투시 도어가 달린 덕분이다. 손짓 한 번으로 투명하게 바뀌기까지 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평소에는 불투명한 상태로 거울 역할을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온전히 기술력이다. 빛의 반사율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접목해 투시 패널을 설계한 것. 여기에 모션 센서를 달면 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평소에 보이지 않던 내부가 환하게 드러난다. 수납장, 싱크대, 의류관리기, 개인금고, 화학약품 보관함 등등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문을 여닫는 번거로움 없이 선택적 투시가 가능해 사생활을 보호한다. 가령 고인의 사진이나 유품 등이 보관된 납골 안치단에 스마트 도어를 적용하면 유족이 원할 때만 내부를 볼 수 있다.
인투시(대표 오재환)의 기술력과 확장성은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았다. 창업 초기부터 국내 유명 인테리어 회사의 1차 협력사로 선정됐을 정도. 각종 경진대회 수상은 물론이고 중소벤처기업부 ‘소부장 스타트업 100’에 이어 CES 출품까지 가히 기술창업의 교과서라고 부를 만한 이력을 쌓아가는 중이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인 오재환 대표의 성장 전략은 무엇일까?
성공을 부르는 열쇠, 기술창업
안정적인 직장 대신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10년 넘게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연구·개발하다가 퇴사한 후 대학교수 생활을 잠시 했다. 정부 지원 등으로 대학가에 창업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마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벤처 붐 같았다. 속내가 궁금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창업보육센터를 비롯해 정말 좋은 지원제도가 많았다. 젊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잠자던 열정이 깨어났고, 공학자로서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창업을 결심했다.
실행에 옮기기까지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경영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선 창업 교육부터 들었다. 한 달 넘게 수업을 듣고, 그런 다음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아내에게 제출했다.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여러 번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정도로 내겐 가장 높은 허들이었다.(웃음) 그런 다음 대학 보육센터에 입주했다. 특허 출원이나 창업 초기 지원이 잘 돼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의 청년창업사관학교(이하 청창사)도 거기서 알려줬다. 기술경력 보유자는 늦깎이 창업이더라도 49세까지는 받아준다기에 공지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충남청창사를 1등으로 졸업했다고 들었다. 청창사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청창사는 초기 창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잠도 거의 안 자고 진짜 열심히 배웠다. 어릴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서울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했을지도 모른다.(웃음) 시제품을 제작하는 단계에 입교했기 때문에 개발 완료까지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노력한 결과 우수졸업기업으로 선정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그걸 기반으로 대기업 1차 협력사가 될 수 있었다.
창업 이듬해부터 여러 경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비결이 뭔가?
기술창업자 대부분은 자신이 잘 아는 기술 분야로 창업한다. 각종 경진대회에서 시장성을 검증받으면 아이템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 청창사에서 투자 IR 피칭을 배운 덕분에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스마트 도어는 확장성이 좋아 2019년에 이미 의약품 보관함, 고급 쇼케이스, 인테리어 장식장, 신발장, 소형 냉장고 등 완제품 개발을 마친 상태라 출품하기도 쉬웠다. 여러 대회와 전시회에서 수상하면서 수요처의 관심을 끌 수 있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수상 이력이 사업에 실제로 도움이 됐나?
일례로 신용보증기금 창업경진대회에서 4차 산업혁명 부문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를 계기로 퍼스트 펭귄형 창업기업으로 선정돼 1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9년에 특허받은 투시 디스플레이로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 참가해 금상을 받은 것도 사업 초기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우수발명품으로 선정되면 정부나 공공기관 등에서 우선 구매하도록 추천을 받을 수 있고, 조달청 등록 시 기술이나 품질 평가 면제 혜택도 주어진다.
CES에 2년 연속 참가했던데, 어떤 제품을 선보였나?
2021년에는 스마트 투시 화장품 냉장고를 소개했고, 2022년에는 스마트 워치 와인더로 큰 관심을 받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일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다.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전시회가 취소되는 일이 많아 아쉬웠는데, CES에 참가해 성과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다. 바이어 미팅을 가진 미국 회사 한 곳과 현재 스마트 투시 신발장 개발을 진행중이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신제품을 계속 출시하던데, 시장 반응은 어떤가?
창업할 때부터 B2C보다 B2B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대신 비즈니스 상대가 기업이기 때문에 마케팅 측면에서 신경 쓰는 부분이 많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제품 소개는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레퍼런스에 가깝다. 활용 범위를 알려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OEM과 ODM 가능 여부를 표시해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모방할 수도 있는데 괜찮나?
겉으로 보면 따라 하기 쉬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는 액정을 사용하지 않은 고체 형태의 투시 디스플레이 패널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이미 국내외 기술특허를 12건 출원했다. 처음부터 분쟁을 예방하고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뒀다. 핵심기술을 탈취·도용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기술임치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CES 2022에 선보여 큰 관심을 모은 스마트 워치 와인더. 소중한 시계를 계속해서 회전시켜 언제나 새것처럼 보관해준다.
선택적 투시가 가능해 깔끔하게 수납하면서도 문을 열지 않고 편리하게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문을 열지 않고도 내부를 볼 수 있는 스마트 투시 신발장
다시 태어나도 창업
기술 역량만큼 중요한 게 제조 노하우다.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제조 경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많이 봐온 터라 처음부터 양산을 염두에 두고 단계별로 철저하게 검증한다. 연구개발에서 시행착오는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공을 들였다. 그 시간을 기다려준 주주들에게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20년 자가 공장을 마련했다.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창업하고 1년마다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녔다. 신혼부부가 내 집 마련을 소망하듯 어느 순간 자가 공장을 꼭 가져야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충남테크노파크에 330㎡(약 100평) 공장을 얻은 후부터 계속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차츰 납품 물량이 늘어나면서 제조를 위해 규모가 더 큰 공장이 필요해졌다. 그러다가 지금의 공장을 낙찰받았고, 더 쾌적한 작업 환경을 위해 리모델링을 했다. 직원 복지를 위해 3층에 카페테리아를 설치하고, 각 층마다 작은 휴게공간을 마련했다. 비용은 중진공의 성장공유형자금 지원을 받았다.
굳이 충남 아산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
새로운 공장을 선택하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거래처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만큼 물류비용 등을 고려해 충남 천안이나 아산 아래로는 가지 않을 것, 그리고 부지를 매입해 공장을 새로 지으려면 기간이 오래 걸리므로 가능하면 기존 공장을 매수하거나 경매받을 것. 특히 아산 지역은 디스플레이 기업에 특화된 도시라서 육성책을 적극적으로 추진중이다.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지리적 장점도 한몫했다.
창업한 지 5년이 흘렀다. 데스밸리를 무사히 넘어서는 중인가?
CEO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회사에 필요한 비용을 관리하고 직원들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곧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안에는 자금 마련도 포함된다. 의류관리기 양산 등 사업 영역 확장으로 신규 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계획은?
지난해 가을 스마트 투시 납골당을 버전 업해서 개발했다. 제품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 조만간 계약이 진행될 것 같다. 스마트 투시 캐비닛과 협탁도 신규 론칭했다. 조달청 벤처나라와 혁신장터에 상품 등록을 마쳤다. 공공기관과 사무실 외에도 수요가 제법 있다. 최근에는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와 오산 오피스 등에 설치 시공을 완료했다. 새로운 물건에 사람들이 적응해 소비가 확산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가 그 기점이 될 듯하다.
창업을 후회하지는 않나?
한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린다. 지금까지 창업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아마 다시 태어나도 회사를 차릴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엔지니어일 때는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시야가 넓어지면서 긍정적인 마인드가 됐다. 도리어 좀 더 일찍 창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웃음) 실수를 통해 배워가는 게 적지 않다.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스타트업에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목표가 하나 있다. 바로 상장(IPO)이다. 그런데 창업할 때 이런 부분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법인 설립할 때 자본금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투자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연구노트를 왜 써야 하는지 미리 알았더라면 분명 지금보다 수월했을 것 같다. 법무사나 회계사,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보다 상장사 대표님들을 찾아뵙고 현장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 제도권에서 이런 것들을 상식처럼 알려주면 좋겠다.
창업을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창업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발전해야 한다. 학습 의지와 호기심을 가지고 경영에 대해 꾸준히 배우는 열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누가 조언했다고 팔랑귀처럼 뒤늦게 따라가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데도 인기 있는 분야로 업종을 전환하는 경우가 그렇다. 얼핏 보면 유연한 사고 같지만, 결국 책임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는다.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납골 안치단. 평소에는 완전한 블랙을 유지해 외관상 깔끔하고, 선택적으로 투시할 수 있어 고인을 추모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글 이계선 | 사진 김성헌
출처 : https://nara.kosmes.or.kr/newshome/mtnmain.php?mtnkey=articleview&mkey=211&aid=7250